홀로사는 노인들의 '서러운 어버이날'

by 경사협 posted May 0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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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사는 노인들의 ‘서러운 어버이날’

[동아일보 2007-05-08 04:59]




[동아일보]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7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무허가 판자촌인 속칭 구룡마을 입구에는 환한 봄볕 아래 ‘축 어버이날’이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었다. 이을순(가명·73) 할머니는 그 플래카드 아래를 다리를 끌며 홀로 걸어가고 있었다. 빈 병을 팔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동네 이곳저곳을 다니며 빈 병 줍고 폐지 모아서 일주일에 1000원, 2000원씩 벌어 쓰지.”


이 할머니는 20년째 이 마을에 홀로 살고 있다. 2007년 현재 88만 명으로 추산되는 홀로 사는 노인 중 한 사람이지만 이 할머니는 그중에서도 더 외진 곳에 놓여 있는 사람이다. 소식은 끊긴 채 ‘주민등록상에 남아 있는’ 가족 때문이다.


“남편이 있는데 이혼도 안 해 주고 혼자 도망갔어. 아들도 둘이 있는데 하나는 소식을 모르고, 하나는 저 살기도 힘들지. 생활보호대상자인가 그거 신청해 보라고 해서 알아봤는데, 자식들이 있다고 안 된다네.”


이웃인 박정애(가명·74) 할머니도 이 할머니와 같은 처지다. 아들, 딸 합해 삼남매를 두었지만 연락이 끊겨 혼자 산 지 오래다. 부엌도 따로 없이 수도 하나가 달린 2평 남짓한 방에서 지내는 박 할머니는 이 할머니처럼 밖으로 나가 폐품 파는 일조차 할 처지가 못 된다.


“몸이 아파서 꼼짝도 못해. 일도 못하고. 두통이 너무 심해서 텔레비전도 못 봐. 복지회관에서 도와줘서 그나마 살지. 주민등록상에 자식들이 있다고 나라의 지원도 못 받아.”


구룡마을의 노인들을 지원하는 인근 능인사회복지관의 사회복지사는 “구룡마을엔 어려운 처지의 독거노인이 많은데 이 중 상당수는 주민등록상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대상자가 못 된다”며 “복지관에서 지원하는 월 5만 원 정도로 생활한다”고 전했다.


서울 송파구 문정2동의 무허가 비닐하우스촌인 속칭 개미마을에도 자녀가 등 돌린 독거노인이 적지 않다. 이 마을 김영희(가명·68) 할머니는 “자식 욕 먹일까봐”라며 속내를 털어놓기를 못내 꺼렸다. 10년째 홀로 비닐하우스에서 살고 있는 김 할머니는 자식 때문에 주위에 손을 벌릴 수가 없다고 했다. 서른이 되기 전 남편과 사별하고 아들 셋을 혼자 키웠지만 할머니에게 남은 건 성한 데 없는 몸과 빚뿐이다.


법적으로는 자식이 있다고 기초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7일 “독거노인에게 자식이 있어도 소득이 최저생계비 미만이라든지 부양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는 증빙자료를 내면 보호대상자로 지정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원칙과 현실의 거리는 멀다. 현장에서 독거노인을 돌보는 한 사회복지사는 “동사무소나 기관에서는 서류만 보고 판단을 하기 때문에 주민등록상 부양자가 있으면 혜택을 받기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애들 때문에 살기가 더 힘들어.” 어버이날을 맞는 ‘자식 있는 독거노인’들의 한결같은 호소였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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