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 받는 ‘중고생 엉터리 봉사’

개학때면 ‘시간 메우기용’ 몰려…“차라리 오지 않았으면…”

윤두현기자 ydh117@munhwa.com 


중·고등학생들이 자원봉사 시간을 채우기 위해 방학 막바지에 복지시설에 몰리면서 복지시설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중·고등학생들은 시간때우기에만 급급해 복지시설 관계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봉사가 아니라 시간채우기=지난 12일 직장에 다니며 봉사활동을 펼치는 이성욱(30)씨는 자신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영등포역 부근 한 무료급식소에 30여명의 학생들이 자원봉사를 하겠다며 찾아온 것을 보고 대견스럽다는 생각을 가졌다.

하지만 한 구청 봉사센터의 연결로 점심급식에 나섰던 학생들이 무료급식을 시작한 지 1시간이 지나자 정해진 시간을 채웠다며 배식도중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게다가 학생들이 무료급식으로 나눠줘야 할 점심을 먹는 바람에 식사를 받지 못한 노숙자들이 항의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이씨는 “학생들은 자원봉사라기보다 정해진 시간만 때우면 된다는 식”이라며 “다른 자원봉사자들이나 무료급식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불쾌감만 줬다”고 어이없어했다.

강북의 한 노인복지시설에서는 지난달말 노인야유회를 가질 예정이었지만 자원봉사 학생들이 나타나지 않는 바람에 행사를 연기했다. 이 복지시설은 행사 며칠 전에 구청 복지관을 통해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도울 학생 자원봉사자들을 요청했다. 구청은 학생 자원봉사자 10명이 갈 것이라고 전해왔지만 막상 야유회 당일에 나타난 학생은 3명에 불과했고 행사는 열리지 못했다.

노원구 성모자애보육원은 지난달 말 한 복지관의 부탁을 받고 중·고등학생 20명이 자원봉사에 참여하도록 했다. 그러나 막상 봉사나온 학생들은 무슨 일을 해야할지 기본적인 자세조차 갖추지 못한 상태여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보육원 관계자는 “학생들에게 자원봉사가 무엇이고 어떤 일을 해야하는지 물었더니 한명도 대답을 못하더라”면서 “괜히 시설에 있는 아이들에게 상처만 줄까봐 주변 청소만 시키고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봉사 활동 프로그램 無·봉사 의식 無=현재 교육부는 지난 1996년 시작된 7차교육과정에 따라 중·고등학생들에게 교내 특별활동 10시간외 개인별 봉사활동(중학생 8시간, 고등학생 10시간)을 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학생들이 이 봉사활동 시간을 주로 방학때 채우려하다보니 매해 여름방학 막바지만 되면 복지시설은 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각 지자체 봉사센터나 복지관등이 여름방학마다 이들을 위한 각종 봉사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으나 워낙 수요가 많아 애를 먹고 있다.

실제로 동대문구 복지센터는 올 여름방학중 1000여명 학생들을 대상으로 복지시설 탐방·장애인체험 등 봉사활동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하지만 여름방학 막바지에 신청자들이 급증하고 문의전화가 줄을 이으면서 포화상태다. 한 관계자는 “관내 복지시설은 한곳도 없는데 중·고등학교는 26개교에 이른다”며 “활동할 곳보다는 활동하려는 학생수가 훨씬 많다보니 체험이나 청소 등 시간때우기식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봉사인식 부재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도봉구 복지센터 한 관계자는 “학생들이 봉사에 대해 제대로 교육을 받지않고 무작정 찾아오기 때문에 복지시설에서도 이들이 오는 것을 기피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청소년 자원봉사센터 김정배 소장은 “평소학생들이 과외나 보충수업 등으로 봉사활동할 시간이 없다보니 방학기간중에만 몰리는 현상이 나타난다”며 “학교에서 봉사활동 전담교사를 두어 지속적으로 봉사활동을 관리하고 지역현안을 같이 고민하는 프로젝트 개발 등 봉사영역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두현기자 ydh117@munhwa.com / 기사 게재 일자 2005/08/18

출처 :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