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정책, 새 청사진 필요하다.

by 경사협 posted Jun 0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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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복지정책, 새 청사진 필요하다 


중앙일보  기사전송 2008-06-04 00:20 | 최종수정 2008-06-04 00:20

[중앙일보 임봉수] 대통령 지지율이 바닥을 모르고 곤두박질하고 있다. 여기엔 일관성과 투명성을 결여한 복지정책에도 큰 원인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취임 직후까지 장밋빛 복지정책을 약속하며 국민들을 들뜨게 했다. 출산에서 사망까지 단계별 맞춤서비스를 제공하는 ‘생애희망 디딤돌 복지정책’을 강조했다. 약속대로라면 노무현 정부의 복지정책을 능가하는 적극적인 정책이 추진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그런 의지는 새 정부 출범과 더불어 슬그머니 약화됐다. 김성이 복지부 장관은 “새로운 복지정책은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도움이 필요한 경우 국가가 손을 내미는 것”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근로능력이 없는 이에게만 최소한의 복지를 보장할 터이니 나머지는 스스로 일을 통해 자립하라는 뜻이다. 그 후 한 달이 채 못 돼 복지정책은 더 후퇴했다. 기획재정부는 내년 예산편성 지침을 발표하면서 “혜택이 줄지 않는 수준으로 복지지출을 효율화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예산축소를 의미한 것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불과 석 달 만에 복지정책이 확대에서 축소로 180도 바뀐 것이다.


이런 의지는 현장에 즉각 반영되고 있다. 복지부 지원을 받아 지자체들이 시행 중인 산모·신생아 도우미 사업이 최근 예산부족으로 사실상 중단됐다. 이 사업은 생애 디딤돌 복지정책의 첫 단계라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다음 단계 서비스들의 도미노식 축소·폐지 관측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미숙아·선천성 이상아 의료비 지원 사업’ 등 보육서비스들이 줄줄이 중단되고 있다.


서민들은 불안한 눈으로 정부를 지켜보고 있다. 국내외 경제여건 악화로 삶은 점점 고달파지는데 그나마 의존했던 사회안전망마저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불안이 서민층에 머물지 않고 국민 전체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언론사의 조사에 따르면 국민 53.4%가 18대 국회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복지제도 정비를 통한 사회안전망 강화’를 꼽았다. 그런 답을 한 사람 가운데 60.9%가 월 가구 소득 251만~400만원인 중산층이었다. ‘의료보험 민영화 반대’ ‘연금개혁’ 등 광우병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복지정책 관련 구호들이 촛불집회에서 난무하는 모습은 바로 이런 걱정의 표출이라고 봐야 한다. 정부는 촛불집회의 순수성이 변질되고 있다는 판단이지만 애초부터 녹아 있었던 것이다.


정부도 인정했지만 경기는 하강 국면으로 들어섰다. 국민들의 삶은 더 고단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제 정부는 여건 변화에 맞춰 복지정책의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해야만 한다. 최대의 복지 공약이었던 일자리 창출이 어려워지고 있는 만큼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국민들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 세간에는 성장을 강조하는 정부가 복지정책을 더욱 옥죌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기초생활보장제도, 근로장려세제(EITC) 등 노무현 정부에서 도입된 복지정책들이 전면 재검토될 것이라는 루머도 나오고 있다.


국민들은 이에 대한 정부의 해명과 위로를 듣고 싶지만 복지부는 입을 닫고 있다. 복지부 장관은 “우리 국민이 ‘복지병’을 앓고 있다”며 경제부처들의 사업축소 요구에 수동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복지정책을 조율하는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은 한 달 이상 공석이다. 대통령은 한시바삐 부실한 복지라인을 대폭 강화하고 민심 수습에 나서야 한다. 지금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정부의 솔직한 태도와 협조를 구하는 자세다. 약속한 정책의 실현이 불가능해졌다면 상황 변화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옳다. 모든 공약이 실현될 수는 없다는 것을 국민도 알고 있다. 뚜렷한 명분도 없이 말 바꾸기를 계속하면 어느 순간 수습할 수 없는 국면에 빠지게 된다. 촛불집회에 나타난 ‘복지정책’ 불만은 비등점을 향하고 있다.


임봉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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