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하고도 편히 쉴 수 없어요

by 경사협 posted May 1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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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하고도 편히 쉴 수 없어요
아들 취업할 때까지 벌어야죠”

④ 창원 60대 가장 이야기

노모·자식 뒷바라지에 퇴직금도 바닥나



창원의 한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60대 가장 한씨가 청소를 하고 있다. /성민건기자/

어버이날인 지난 8일 오후 창원의 한 아파트. 다소 센 바람으로 쓰레기가 날리자, 이마에 깊게 팬 주름이 있고 깡마른 체구의 중년 남자가 빗질에 한창이다. 이 아파트 경비원으로 환갑을 갓 넘긴 한모(61)씨다.

한씨는 청소를 비롯해 입주민들의 우편 수발, 주차 관리, 분리수거, 순찰 등의 일도 하고 있다. 간혹 자신보다 나이 어린 입주민들의 등쌀에 짜증이 날 법한데도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

“24시간 근무에 온갖 잡다한 일을 하느라 피곤하죠. 하지만 요즘 이런 일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아요. 내가 벌지 않으면 가족 생활비를 마련하기가 어려워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한씨가 이 아파트 경비원을 한 지는 4년이 넘는다. 그 전에는 창원의 한 생산공장에서 25년 정도 일했다. 오랜 직장 생활에 몸도 마음도 지쳐 잠시라도 쉬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가 벌지 않으면 집안의 수입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유일한 희망인 아들(31)은 아직까지 직장을 구하지 못했고 수천만원의 카드빚까지 안고 있다. 아내는 어머니(78)의 병 수발을 하느라 다른 부업은 생각할 여유가 없다.

한씨의 일생은 돌이켜보면 고통의 연속이었다. 거창의 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 공부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배고픔에 소나무 껍질까지 벗겨 먹었던 그는 15살에 집을 뛰쳐 나왔다.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는 어렵게 모은 돈으로 부모님께 라디오를 사드린 뒤 군에 입대했을 정도로 효심이 남달랐다.

한씨는 제대한 뒤 창원의 한 공장에 들어가 직장생활을 했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 자식을 키우면서 돈을 벌기 위해 특근과 야근을 마다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 편안하지는 않지만 여유로운 생활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나이가 꽉 찬 아들이 취업에 실패하고 수년째 병든 노모 수발에 그동안 모아 놓은 퇴직금까지 거의 바닥났다. 그나마 자신이 버는 월 100만원도 안되는 수입으로 근근이 가계를 꾸려가고 있지만 이마저도 언제까지 이어질지 불안하다.

육십 평생 고생만 했다는 그는 자신보다 아내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좋은 구경 못 시켜 주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사 주질 못했는데 치매에 걸린 어머니까지 돌보기에 너무나 안쓰럽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한평생 힘든 삶은 자신의 업보’였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아들이 빨리 좋은 직장에 들어가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면 더 바람은 없다”며 빗자루를 다시 들었다. 김정민기자

처 : 경남신문isgu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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